[옷소매 붉은 끝동] 여자독백 - 성덕임 역(이세영)
  • 작성일2021/12/28 15:44
  • 조회 948

전하께선 처음부터 모든 일을 알고 있었지요.

도승지가 죽어야만 했겠지요. 전하께서 아무리 감싸려 하신다 해도 방도가 없었겠지요.

친아우를 죽이셔야 했던 그때처럼 죽이셔야만 했겠지요.

소인 역시 애들 장난을 한 것이 아니 옵니다.

전하의 노여움을 살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제 동무를 구하기 위해 나선 것이옵니다.

감히 대비전까지 끌어들이려 한 것이옵니다.

제게는 그토록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제 목숨보다도 더.

전하께서는 모든 정황을 아신 채 계획을 세우셨고, 계산을 하셨고, 정치를 하셨습니다.

전하께서 그리하시는 동안 제 동무는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찮은 궁녀 따위는 죽어도 돼옵니까. 왕실을 위해서 평생을 바치는 궁녀는 죽어도 돼옵니까.

전하께서 일방적으로 정하신 그때가 되기 전에 누군가 죽는다면 어찌 되옵니까.

그저 어찌할 수 없는 희생이 옵니까. 아십니까. 소인은 제 동무를 영영 잃게 될까 두려워

매일 밤 우물가를 뒤지며 돌아다녔습니다.

향낭 하나에 눈이 뒤집혀 연못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매일 매 순간이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그 약조 하나에 기뻐서 남 몰래 울었습니다.

하오나 실상은 전하께서는 모든 것을 뻔히 아신 채 소인을 속이셨지요.

한낱 궁녀 따위야 얼마든지 속이실 수 있는 분이니까요.

하지만 소인은 더 이상 기만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예. 소인도 아옵니다. 하오니 벌을 내리소서. 소인이야 어차피 한낱 소모품인 궁녀가 아닙니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이시면 그만 아닙니까.

소인은 전하를 연모한 적이 없사옵니다. 한 번도 사내로서 바라본 적이 없사옵니다.

앞으로도 결단코 그럴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