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대사> 북어대가리 - 자앙
  • 작성일2011/05/1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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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밖으로 떠나는 것이 즐겁다는 기임의 환호성이 들린다. 트럭운전수와 다링의 웃음 소리도 들린다. 잠시 후, 트럭이 경음기를 울리며 떠나는 소리가 들린다. 창고는 조용해진다. 자앙, 식탁 앞에 힘없이 주저앉는다. 늙고 허약해진 모습이다. 그는 식탁 위에 놓여 있는 북어 대가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래, 나도 너처럼 머리만 남았군. 그저 쓸쓸하고......허무한 생으로 가득찬......머리만...... 덜렁......남은거야.( 두 손으로 북어 대가리를 집어서 얼굴 가까이 마주 바라보며) 말해보렴, 네 눈엔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그토록 오랜 나날......나는 이 어둡고 조그만 창고 속에서...... 행복했었다. 상자들을 옮겨 오고......내보내며......내가 맡고 있는 일을 성실하게 잘 하고 있다는 뿌듯한......그게 내 삶을 지탱해 왔었는데......그러나 만약에......세상이 엉뚱하게 잘못되고 있는 것이라면......이 창고 속에서의 성실함이......무슨 소용 있는 거지? (사이) 북어 대가리야, 왜 말이 없냐? 멀뚱 멀뚱 바라만 볼 뿐 왜 대답이 없어? (북어 대가리를 식탁 위에 내려 놓는다.) 아냐, 내 의심은 틀린거야. 덜렁 남은 머리 속의 생각만으로 세상을 잘못됐다구 판단해선 안돼. (핸들 카에 실린 상자를 서류와 대조하며 혼자서 쌓기 시작한다.) 제자리에 상자들을 옮겨 놓아라! 정확하게 쌓아! 틀리면 안 돼! 단 하나의 착오도 없게, 절대로 틀려서는 안된다! (자앙, 느릿느릿 정성을 다해 상자들을 쌓는다. 무대 조명, 서서히 자앙에게 압축되면서 암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