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대사 밀회 - 오혜원
- 작성일2014/09/1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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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원: 저는 지금 오직 저 자신한테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한성숙 이사장, 서필현 회장을 대신해서 피고인석에 앉아계신 홍태영 이사, 그리고 변호인단을 총 지휘하시는 김인겸 전무님까지, 저 분들이 어떤 벌을 받건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주범이 아니라는 말로 선처를 구할 생각도 없습니다. 제가 행한 모든 범법행위는 그 누구의 강요도 아니고, 오직 저의 선택이었습니다. 잘못된거죠. 그 덕에 저는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법인카드, 재단 명의의 집, 차, 고용인. 저의 성장배경이나 저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라, 그 모든 걸 다 진짜 제 껄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제가 포기한 음악의 세계에도 맘껏 힘을 행사하고 싶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던 것처럼, 유전자에 저금이 되 있는 것처럼, 아무도 뺏지 못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뜻하지 않게 제 인생의 대차대조표가 눈 앞에 펼쳐졌어요. 그렇게 사느라고 잃어버린 것들, 생각하기도 두렵고 인정하기도 싫었던 것들이 제게 물었습니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꺼냐구요. 전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제 인생의 명장면이죠. 난생 처음 누군가 온전히 저한테 헌신하는 순간이었어요. 저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것도 아니고, 절절한 고백의 말을 해주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 친구는 그저 정신없이 걸레질을 했을 뿐입니다. 저라는 여자한테 깨끗한 앉을 자리를 만들어주려고 애썼던 것뿐이었는데, 저는 그 때 알았습니다. 제가 누구한테서도 그런 정성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걸. 심지어 나란 인간, 나 자신까지도 성공의 도구로만 여겼다는 걸. 저를 학대하고 불쌍하게 만든 건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고 살면서 저도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한테 상처와 절망을 줬겠죠. 그래서 저는 재판 결과에 승복하려고 합니다. 어떤 판결을 내려주시던 항소하지 않겠습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