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정 "무명 40년 만에 전성기" 이순재 "동방싸롱 출근, 어제 같아"
- 작성일2017/04/0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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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랑연극상] 배우 예수정
'전원일기'의 할머니가 어머니
한태숙 연출 '고독…'으로 데뷔 '벚꽃 동산' '과부들' 여러 주역
"보잘것없는 역할 같지만 그것도 귀한 인생이더라"
"극장의 냄새, 빛…. 무의식으로 접한 모든 것이 신비하고 익숙했던 것 같아요. 갓난쟁이일 때 어머니가 국립극단에 계셨는데 당대 유명 배우였던 변기종·강계식 선생님이 돌아가며 무대 뒷방에서 절 키우셨지요. 막 올릴 때 '징'하고 울리던 소리, 무척이나 편했어요."
예수정(62)은 배우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여리여리한 외모인데, 무대에서는 강렬하다. 그의 어머니는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김 회장(최불암) 어머니로 유명한 정애란(1927~2005). 엄마의 '무대 육아'는 예수정의 눈과 귀, 연기 근육과 감수성을 키웠다. 예수정 집안엔 연극 DNA가 면면히 흐른다. 딸 예나는 연극연출가다. 배우 한진희가 형부다.
제27회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인 예수정은 오는 12일부터 예술의전당에서 막을 올릴 '세일즈맨의 죽음' 연습에 몰두하다 수상 통보 전화를 받았다. 그는 "제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요?"라며 되물었다. 지난해 영화 '부산행'의 할머니 역과 최근 종영한 드라마 '피고인'의 차민호 어머니 역할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지만, 무대 경력 40년 가까운 배우다. 1979년 한태숙 연출의 연극 '고독이라는 이름의 여인'으로 데뷔한 뒤 '밤으로의 긴 여로' '19 그리고 80' '벚꽃 동산' '과부들' '하나코' 등 연극 무대 주역이었다.
"제가 하는 유일한 '자랑질'이 뭔지 아세요? '40년 무명배우'예요. 제가 무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여주는 증표잖아요." 고려대에서 독문학을 전공한 그는 극작가 브레히트를 탐독하던 조용한 소녀였다. 어머니는 '대접받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길'이라며 딸이 자신의 뒤를 잇길 원치 않아 했다.
하지만 잠재된 끼는 예수정을 가만두지 않았다. "대학 극회에서 장두이(배우·연출가) 선배에게 배우면서 젊은이한테 사색의 공간을 제시하는 연극의 역할에 푹 빠졌어요. 작품 속 인물이 절 화살처럼 쑥 뚫고 지나가 나를 통해 관객에게 명징하게 투사될 때 그 희열이란…."
엄마 몰래 연기를 했던 그에게 "이러면 안 된다. 네 연기력을 믿는다"며 정애란을 찾아가 어렵게 허락을 받은 이가 유덕형(79) 서울예대 총장이다. "한태숙 선생님을 만나면서 사람을 통째로 흔들어버리는 에너지를 경험했고, 유덕형 선생님을 통해 연극이란 장르의 예술성에 대해 '점'을 찍었죠. 김우옥 선생님을 만나고는 섬세함이 더해졌어요."
1983년부터 8년간 독일 유학 생활을 마친 뒤 한동안은 쓰레기 분리수거, 토큰 불법 판매 등 '민원 신고 전담' 아줌마로 동네를 누볐다. 여려 보이지만 속엔 "불이 끓는다"는 게 생활에서 드러난다. '생활 연기'는 무대에서 꽃피웠다. 십여 년 무대에 서다 2000년대 초 "돈 벌겠다"며 아프리카로 일하러 가기도 했다. 그때 "연기하셔야지 거긴 왜 가계세요"라고 대본을 보낸 이가 '그린벤치'(2005) '과부들'(2012)의 연출가 이성열이다.
"어느 인생이든 빛나는 몇 초의 순간이 있다잖아요. 나이가 드니까 보이는데, 겉으로 봐선 보잘것없는 역할 같지만 그것도 귀한 인생이란 거예요. 무대는 가위질(편집)당하지 않잖아요. 관객이 가장 적극적인 편집자니까요. 어렴풋한 빛을 닮은 그 예리한 한 줄을 잘 뽑아내 연기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무대를 떠날 수 없는 거죠."
[특별상] 배우 이순재
1956년 '지평선 너머'로 데뷔… 연극·영화·TV 넘나드는 노장
연기 아카데미서 후배 양성도
"배우는 죽기 전까지 연기해야 무대 있는 한 계속 오른다"
제27회 이해랑연극상 특별상 수상 배우 이순재(82)는 '한국 드라마사(史)' 교과서를 펼치듯 연기 경력을 들려줬다. 대학 3학년부터 연극을 시작해 1956년 유진 오닐의 '지평선 너머'로 데뷔해 연극과 영화, TV 에서 잔뼈 굵은 노장이니 그럴 만했다. 2시간 가까이 국내외 배우·연출가·영화감독 이름과 작품은 물론 영국 올리비에 연극상 수상작과 아카데미 주연상 연도까지 세세히 짚었다.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대학 졸업하고 이해랑 선생이 운영하던 명동의 다방 '동방싸롱'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어요. 말석이라도 뽑힐 줄 알고." 동방싸롱은 한국 현대연극의 중심이었던 극단 신협(新協·단장 이해랑) 멤버와 영화인, 문인들의 아지트였다. 유치진(극작가·연출가) 이진순(연출가) 선생에 박인환, 김수영 같은 시인들도 드나들었다.
해체되다시피 한 서울대 연극회를 극작가 김의경 등과 재건했던 그는 1960년 서울대·연세대·고려대 극회 중심으로 실험극장을 창립했다. 멤버는 김의경·허규·이기하·김성옥·김동훈·이낙훈·오현경·여운계 등이었다. "그게 소극장 운동의 시작입니다. 연극을 학문으로 공부하고 직업으로 택한 것이지요."
'배우에겐 우리말 발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사전을 펴놓고 발음부터 공부했다. 지금도 학생들을 가르칠 때마다 "지각, 특별대우, 엉터리 발음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세 가지"라고 한다. 대학 연극회 친구들과 해외 원작을 어렵게 구하고 '스타니슬랍스키 연기론' 같은 연극 책과 잡지도 일일이 번역해 공부했다.
제대한 뒤 민간인 신분으로 군 방송실장 노릇을 2년 동안 했지만 그럴수록 연극에 대한 갈증은 깊어졌다.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해야겠다 생각했지. 남산 드라마센터로 가서 이해랑 선생에게 '배역 하나만 달라'고 매달렸어요. 마침 '로미오와 줄리엣'(남궁원·오현주 주연)의 머큐쇼 역할이 비어 있다셨죠. 그 뒤로 본격적으로 이 길로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각오는 했지만 배가 고팠다. 연극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출연료를 받은 게 1978년 '세일즈맨의 죽음' 때다. 방송은 '생활'을 위해 시작했고 1964년 TBC 개국 공채 1기 탤런트로 입사했다. 지금까지 연극·영화·드라마 가리지 않고 300여 편 이상 출연했다. 세종대·가천대에서 후배를 양성했고, SG연기 아카데미 원장도 맡고 있다. 그래도 연극에 늘 회귀본능이 있다. "올 초 '세일즈맨의 죽음' 지방 공연을 하면서 같이 출연한 유연석한테 말했어요. 평생 연기하고 싶으면 연극해야 된다고. 힘을 축적하게 된다고, 돈 안 된다고 소속사가 못하게 해도 제치고 해야 한다고 했죠."
그는 오는 4일부터 장용·정영숙·오미연 등과 함께 서울 예그린씨어터에서 연극 '사랑해요 당신'으로 무대에 오른다. 아내가 치매에 걸린 70대 부부의 삶을 다뤘다. "우리 계통에 80대 건장한 친구들 많이 있는데 자꾸 뒷전으로 앉혀놓으니까…. 신구나 박근형을 봐요. 적어도 TV 시청률의 1~2%는 보탤 수 있는 사람이거든. 해외에선 앤서니 홉킨스 같은 배우들이 여전히 주연이잖아요. 무대가 있는 한 계속 올라야죠. 배우라면 죽기 전까지 연기해야 하는 거 아니요."
[심사평]
'연극은 배우의 예술' 명제 충실히 보여줘
제27회 이해랑연극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임영웅)는 지난 20일 조선일보사에서 회의를 열고 90분간의 열띤 토론 끝에 만장일치로 배우 예수정(62)을 수상자로 결정했다.
심사위원들은 후보로 배우 예수정·남명렬·박지일·조재현·김태훈·김소희·윤상화와 연출가 이병훈·이윤택·윤광진·박정희·최용훈·고선웅 등을 추천했다. 또 지역 예술활성화에 이바지한 연출가 김창일(목포)·이상용(마산)·장규호(속초)·장창석(통영)도 포함했다. 이어 이해랑 연극 정신을 계승했는가, 평가할 만한 최근 성과가 있는가 등을 기준으로 후보자를 좁혀 나갔다.
토론 끝에 "40년간 무대를 누비면서 독일 유학 등으로 다져진 작품 해석력을 바탕으로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는 명제를 충실히 보여준 배우 예수정이 이해랑 정신에 부합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예수정은 연극 '과부들' '그린 벤치' 등에서부터 최근 위안부의 삶을 이야기한 '하나코'까지 강인한 모성애와 가족애(愛)를 이끌어가는 여성성을 보여줬다는 점을 높이 샀다.
심사위원 임영웅·유민영·손숙·허순자·박명성·김기철